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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1급수 물 만난 물고기 : 삼고초려와 수어지교의 관계 그리고 뜻과 유래

by HCHM 2020.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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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고초려 그것은 수어지교.

항상 파트너처럼 같이 붙어 다니는 고사성어들이 있어요. 삼고초려와 수어지교도 대표적으로 붙어다니는 녀석들이죠. 이 둘은 대체 무슨 인연이 있어서 꼭 붙어다니게 되었을까요?

문제라면 문제일 수 있겠지만 한국사는 몰라도 알고 있는 중국사, 그 곳의 주인공 유비와 제갈량. 이 둘의 만남에서 생기게 된 고사가 삼고초려, 그 후 그 둘의 관계를 표현한 고사가 수어지교에요.

 

 

개인적으로 연상되는 건, 삼고초려라 하면 뭔가 초가집부터 짚신 같은 마른 갈색 풀떼기들이 연상되고, 수어지교라 하면, 하얗고 깨끗한 수국 같은 꽃이 연상이 되는데 다른 분들은 어떤 느낌일지 궁금합니다.


삼고초려의 유래

난세답게 수많은 영웅 중 진짜 영웅만 살아남고, 그 영웅들끼리의 치열한 싸움으로, 점점 뒤처지는 부류와 앞서가는 부류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삼국 중 위나라의 조조는 당시 가장 강한 세력을 물리치고 그 자리에서 힘을 늘려가고 있었고, 오나라의 손권은 형과 아버지가 다져놓은 탄탄한 땅 위에서 기반을 다지고 있었죠.

하지만 촉나라의 유비는 마땅한 근거지가 없이 매일 패배하고 도망가는 생활만 하고 있었어요. 그것이 당시 유비의 가장 큰 고민거리이자 원인을 알 수 없는 상황이었죠.

미쳐버릴 것 같은 우울한 유비에게 첫번째 운명의 만남이 일어납니다. 수경선생으로도 불리던 사람으로, 사마휘라는 사람이었어요.

사마휘는 유비에게 인재가 없어서 고생하는 거라 하죠. 놀랐다기보다 뭔 헛소리야 같은 기분이 들었을 것 같은 유비는 "믿을 수 있고 유능한 사람들이 내게는 많이 있는데 무슨 말이냐",고 되묻게 됩니다.

이에 사마휘가 좀 더 큰 그림을 그릴 줄 알면서, "그 사람들의 재능을 끌어내어 잘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얘기라고 합니다. 덧붙여 와룡과 봉추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만 잡아도 천하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하며, 그들이 누군지 묻는 유비에게 "제갈량과 방통입니다." 라고 이름도 알려주죠.


갑자기 떠올라서 하는
쓸데없는 잡담을 좀 하자면...

보통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저 같은 경우, 삼국지를 처음 접하기 전에 삼국지의 영웅들과 에피소드에 관련한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몇 가지 게임을 즐긴 것도 있었구요. 이미 재밌을 장면들은 전부 스포를 당해버린거죠.

하지만 제가 느낀 건 삼국지는 적절한 스포가 '이 상황이라면...!' 같은 느낌으로 예고편처럼 기대감을 부풀려주더라구요. 그렇게 느껴서인지 나쁘지 않았어요. 아마 그런 게 없었으면 오히려 다 읽지도 못했을 것도 같구요. 들어서 알고 있던 전투들이 기대돼서 계속 읽어나간 것이 아무래도 큰 것 같아서...

그래서 삼국지를 처음 접했을 때, '아 이게 그 유명한 제갈량과 사마의인가?' 라고 착각하면서 읽어나갔던 적도 있었고, 그러다가 유비 밑에 들어오지 않는 사마휘를 보고 '이러고 나서 조조에게 가는 거구나.' 했는데,

그 둘이 다른 인물이라는 걸 알고 그럼 친척관계인지, 궁금해져서 찾아보다가 결국 별다른 자료가 없어서 알 수 없는 걸로 끝나서 찝찝했던 기억이, 쓰다 보니 이름을 보고 다시 떠오르네요. 그냥 뭐 그랬었다는 바보 같은 이야기.


그 후 머리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으로 여러 가지 궁금증에 두근거리는 유비 앞에 서서라는 인물이 찾아오게 돼요. 그리고 그것이 두 번째 운명의 만남이었습니다.

이때 유비는 회의실 안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장막 안에서 계책을 내어 천 리 밖에서 승리를 거둔다.' 너무 기초적이지만 잊고 있었던 전략가의 중요성을 새삼스레 실감하게 되죠. 유비의 온전한 사랑을 받게 된 서서는 어떤 한 사람을 추천합니다. 디렉터에 대한 갈증이 이제 막 끓어오르기 시작된 유비가 마다하지 않고 즉시 데려올 것을 부탁했지만,

"제갈량은 가서 만나볼 수는 있으나 몸을 굽혀 오게 할 수는 없습니다. 직접 몸을 낮추시고 방문하셔야 합니다."라는 말을 들을 뿐이었어요. 그 말을 받아들이고는 제갈량을 만나러 떠납니다.

아마도 서서의 추천인만큼 서서정도만 된다면, 아니면 조금은 모자라도 충분히 나를 낮출 가치가 있다라고, 서서에 대한 믿음이 가장 컸을거라 생각해요. 그만큼 도량이 넓었던 것도 있고, 그만큼 1급수 물에 대한 갈증이 심했던 것도 있었겠지만.

처음 찾아갔던 가을, 집에는 동자 한 명이 지키고 있을 뿐 제갈량은 여행을 떠나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는 말을 듣게 돼요. 돌아가기 전 유비는 동자에게 "한나라 좌장군 의성정후 예주목 황숙 유비가 찾아왔었다고 전해주거라."라고 하는데, "음... 수헬리베붕탄질산플네나마알규인황염아칼칼스티바크망철코니구아."

"유비가 찾아왔노라고 전해드리거라."

결국 제갈량을 만나지 못하고, 긴 이름을 외우지 못하겠다는 동자에게 짧게 유비가 찾아왔었다고 전해달라고 한 뒤, 소득이라고는 돌아가는 길 우연히 제갈량의 친구를 만나 짧은 말 한 마디 듣는 정도였으니... 꽤나 우울했을 것 같네요.

시간이 흘러 겨울, 다시 찾아가 보았으나 또 제갈량은 집에 없고, 그를 찾아온 손님들과 인사만 하고 다시 돌아오게 돼요. 이쯤되면 포기하고 내가 두 번이나 찾아갔으니까 알아서 오겠지, 안 오면 어차피 나한테 올 마음이 없는 거야, 같은 마음이 들어서 어느 정도는 포기할 마음이 들었을 것 같은데요.

다음 해 봄, 무슨 심정이었을지 모르겠을 유비는 한 번 더, 다시 찾아가게 됩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은 했을까요? 서서를 얼마나 믿었으면 이렇게 보이지 않는 귀신을 찾는 것처럼 홀린 듯이 만나러 갔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행히 제갈량이 돌아와 있다는 동자의 말을 들었어요. '언제만나는거야 대체' 하면서 금방 읽을 수 있는 글을 기다리는 저마저 두근거림과 설레임이 느껴졌었는데요. 하지만 즉시 만나보려는 순간, "돌아와 계시나, 낮잠을 주무시고 계십니다." 고 덧붙이죠. 이 말을 들은 유비는 "그럼 깰 때까지 기다리겠으니 깨우지말라"고 합니다.

조금 더 맛있는 밥을 먹기 위해 뜸을 들일 줄 아는 사람이었어요. (아니 먹게 해 주기 위한 나관중의 천재성일까요.) 드디어 잡힐듯한 기회에도 서두르지 않고, 마음을 가라앉히며 차분하게 기다립니다.

한참이 지나도 부르질 않아 이상하게 생각한 장비가 들여다보니, 제갈량을 만나고 있을 유비가 혼자 밖에 서서 기다리고 있는 걸 본 장비는 눈이 돌아버리죠. 유비가 부질없어 보이는 일에 고생하고 마음 쓰는 게 원래부터 화가 나있던 장비는 "이게 자는 척하면서 안 나오는 거 봐라. 자는 척하는 거 다 안다. (3초 안에 안나오면) 불지른다."(고 했는데, 여기서 유래된 게 삼고초려일 리는 없고) 며 방방 뛰는데, 급하게 관우가 달래서 데리고 갑니다.

드디어, 용이 눈을 떠요. 인기척을 느끼고 누가 왔냐고 묻는 제갈량에게 동자가 얼른 대답합니다. "유비가 한참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라고.

그리고 마침내 그 정성에 감복한 용이, 자리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그 후에는 영웅 유비와 제갈량의 일대기, 삼국지가 가장 흥미진진한 흐름으로 흘러가게 되는 거죠. 고생은 많이 했다지만, 제갈량이란 인재를 발굴해 낸 유비에게 있어서

Third Time's a Charm.

삼세번만의 행운. 이처럼 잘 어울리는 일이 있을까요?

 


삼고초려

三 : 석 삼 顧 : 돌아볼 고

草 : 풀 초 廬 : 오두막 려

: 풀로 지은 오두막집에 세 번 찾아가다. 즉, 인재를 발굴하고 영입하기 위해 참을성 있게 노력하다.


만드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누구나 좋아하는 소재.
- 실화를 바탕으로

이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실화라는 것은, 더더욱 소설가의 혼이 가만히 내비둘 수가 없었겠죠. 그래서 세세한 부분에 있어서는 아마도 극대화를 위해 이것저것 조미료가 첨가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과하면 안 하느니만 못하듯 이야기가 인과관계에 맞게 적당히 흘러갈 정도로만 손 봤을거라 생각해요. 이런 소재로도 폭주하지 않고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이 그린 이야기니, <서양에 성경, 동양엔 삼국지>라는 말이 있을 수 있는 거겠죠?

아래는 제갈량이 쓴 걸로 전해지는 출사표의 일부에요. (저 책갈피가 꽤 마음에 드는 녀석인데, 오래 꼽아두면 녹이 슬어버려서... 한동안 안 봤던 아끼는 책에 녹이 묻었어요...)

여담으로 삼방순욱이라고 해서 '조조가 순욱을 세 번 찾아갔다.'고 하는 것도 있는데, 제갈량의 삼고초려가 너무 임팩트가 강했던 탓이었을까요. 순욱 정도의 인물이면 충분히 제갈량과 나란히 할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하구요. 근데 그냥 제 발로 찾아갔다,고 하기는 좀... 없어보이긴 하니까요. 확실히 둘 다 작화가 뛰어난 애니메이션인데 스토리 부문에서 조금 밀리는 부분이 있다는 건 좀 아쉽긴 하네요.


갖고 싶은 건

아무리 인재가 급하다 하더라도, 검증이 안된 사람을 무턱대고 최고의 자리에 앉히는 건 역시 너무 큰 도박이라 생각합니다. 이건 요즘에도 있을 수 없는 정말 파격적인 대우 같은데요. 

상황판단이 빠르고, 일처리가 신중하며 신속 정확하고, 합리적으로 적합한 판단을 하면서, 따뜻한 배려심이라는 정을 앞세우기보다 차갑게 보일 수 있는 공정한 리더십을 지니고, 어쩌면 독단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모든 일에 스스로 나서서 직접 처리하는 유능함에, 마지막까지도 배신하지 않는 충성심까지.

누구나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기본소양을 이미 갖춘 것을 알고 뽑은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그런 걸 할 수 있는 인물들만 골라 뽑은 거 보면 대기업 하나 설립하는 것도 꿈은 아닐 거 같아요. 유비의 안목이... 정말 갖고 싶습니다.


사실 삼고초려의 진짜 유래는

정성이 필요해서 직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명령에 따라, 처음 해본 관우와 장비의 요리를 맛 본 유비가 "야 임마, 고기는 삶고쫄여." 였다는 썰,

삼국지에서 최고로 자존심이 세다는 관우와 장비가 굴복했을 때의 깡패 유비의 기운을, 공명의 집 앞에서 또 느낀 둘이 "생각하지마 삼초 안에 나와줘. 우리가 먼저 죽게 생겼어." 였다는 썰.

또는 산적 우두머리같이 생긴 셋이 "자는 척 하는 거 다 안다, 셋 셀 때까지 안 나오면 피떡으로 만드는 걸 고려해보겠어." 였다는 썰,

혹은 엘프 유비를 본 공명이 첫 눈에 반해, 흔들리고 자괴감이 들었다가, 이 정도 미모라면 그래도 괜찮겠지, 하고 생각하는데 삼초였다는 썰 등등

갖가지 쓰레기같은 개그가 많은 만큼 (개인적으로는 좋아하는 개그 스타일이지만...) 고사성어 중에서는 굉장히 인지도가 높은 녀석.

삼고초려에요. 삼초고려에요.

 


그럼 수어지교의 유래는?

어렵게 데려온 공명인만큼 유비는 파격적인 대우를 해주며 항상 옆에 두려고 했어요.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조차 같은 방에서 잤다는게 역사적 사실이고, 온종일 붙어서 전폭적인 신뢰를 가지고 다양한 중대사에 대해 이야기하며, 모두 제갈량에게 물어본 후에야 결정을 했으니...

관우와 장비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고생해서 데려오게 하더니, 온 지 얼마 안 됐다지만 이렇다 할 공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들 뻘 되는 녀석이 혀만 놀려서 홀리고 있다, 정도는 생각할 수 있을 법한 것 같아요. 게다가 긴 세월 생사를 함께한 자신들보다 더 아끼고 사랑하고 있으며, 오히려 자신들은 업신여겨지고 버림받았다고 느낄 수도 있었겠죠. 

그런 와중에도 눈치 없이 달래주지는 않고, 오히려 제갈량을 스승같이 대하니, 관우와 장비는 "제갈량은 아직 나이도 어린 데다가 재주나 학식이 대단한 것도 없는 거 같고, 게다가 아직 뭐 보여준 것도 없는데, 형님께서 하시는 대접이 너무 지나치십니다." 라고 가시 돋친 말을 하게 돼요.

이 말을 들은 유비는 달래주기는 커녕, "내가 공명을 얻은 것은 그야말로 고기가 물을 만난 격이다. 앞으로 너희들은 다시 이런 말 하지말아라."라고 해버리죠. 이것이 유래가 되어,


수어지교

水 : 물 수 魚 : 물고기 어
之 : 갈 지 交 : 사귈 교

: 물과 고기의 사귐. 즉, 떠나서는 잠시도 살 수 없는 관계, 떨어질 수 없는 사이.


여어득수

如:같을 여 魚:고기 어

得:얻을 득 水:물 수

: 물고기가 물을 얻음과 같다.


수어지교란 단어의 유래는 여어득수라는 말도 있던데, 그럼 조금 더 세련되게 다듬어진 게 수어지교가 아닐까 싶어요. 어쨌든 정말 많은 공을 들여 삼고초려하여 데려온 공명을, 이미 잡은 물고기라 생각하는 대우를 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물고기라 하며 제갈량을 없으면 안 될 환경에 비유하는 걸 보면... 유비에게 있어 제갈량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필수 불가결한 존재로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일화 같아요.


이유도 없이 저렇게 한다는 건,
현실성이 너무 없다 하는 건

인물의 관계를 인과관계로 해석하려는 것 자체가 점점 현실성에서 벗어나, 소설이나 드라마처럼 보려는 시각이라 생각해요. 뚜렷한 인과관계가 드러나는 일은 오히려 각본에 써진대로 움직였기 때문에 가능하니까요. 한 번씩 통통 튀어나오는 애드립들만 보더라도 인과관계를 찾기는 힘들죠. 하물며 본인도 잘 모를 때가 있는 사람의 마음을 철저한 원인과 결과로 나누려는 건 오히려 더 어색한 것 같아요.

뭔지 모르게 끌려서 세 번이나 찾아가게 했다는 것이 유비의 절실함에 감동한 하늘이 준 기회,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안목을 가졌었고, 그리고 제갈량에게 있어 자신을 극한으로 필요로 해주는 사람에게 끌리는 마음, 그 절실함과 감동의 사이에서 피어난 관계. 그냥 이 정도로 넘겨도 괜찮지 않을까요? 우리도 이런 만남을 갖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르니까요. 이미 가지신 분들도 계시겠지만요.


또 혼자 해 본 쓸데없는 생각인데...

물은 물고기를 살게 해 주고, 물고기는 물을 풍부하게 해 주려나요. 제갈량이 있어 유비는 살 수 있었고, 유비가 있어 제갈량의 재능이 꽃핀 것처럼. 그리고 뭔가 상하관계가 확실하게 나누어진 사이에 쓰는 말인 것 같아요. 일단 단어 자체가 갑과 을, 물과 물고기니까요. 

지교라는 말이 들어간 사자성어들은 엄청 많죠. 관중과 포숙아의 우정에서 유래된 관포지교, 목을 베어 줄 수 있을 정도로 절친한 사귐이라는 문경지교, 지초와 난초같이 향기로운 사귐의 지란지교, 쇠와 돌같이 단단한 사귐의 금석지교 등등 확실히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 사귐에 대해서는, 그 사이가 동성이던 이성이던 관계없이, 무엇에 비교해도 부족할 만큼 갖고 싶고 부러운, 그런 영롱한 것인가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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