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참마속의 뜻과 유래
읍참마속은 흔하게 알려진 고사성어 중 변방에 사는 노인의 말이란 뜻을 가진 새옹지마처럼 단어 그 자체에 뜻이 보이는 고사성어가 아니죠. 단어 그 자체의 뜻으로 울며 마속을 베다, 뭐라는 건지... 생기게 된 유래를 알아야 비로소 이해가 되고 뜻이 받아들여지는 고사성어이면서, 그와 더불어 세트로 기억할 수 있는 고사성어도 꽤 많은 것 같아요.
마가오상 중 백미의 동생 언과기실 마속이 신상필벌을 위한 일벌백계로 읍참마속 당하다.
그래서 마속이 뭐냐
마속은 중국 삼국시대 촉나라의 장수로, 마 씨 오 형제 중 막내였습니다.
이 다섯 형제는 한국의 나현, 다현, 아현 같이 현 돌림이라던지, 현우, 지우, 윤우 같이 우 돌림처럼 사용하는 돌림자를 사용했는데요. 상 돌림을 사용하는 이 형제들은 모두 공부도 잘하고 재주도 뛰어나기로 유명해서, 동네에서는 마씨 가문의 다섯 상 이라는 뜻으로 마가오상이라고 불렀다 해요.
마가오상
馬 : 말 마 家 : 집 가 五 : 다섯 오 常 : 항상 상
: 마씨 오 형제가 모두 재주가 뛰어나고 이름 자에 常(상)자가 들어있음. 즉 형제 모두가 재주와 명망이 높다.
그중 가장 뛰어나다는 평을 들은 건 눈썹이 하얀 마량. 흔히 여럿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백미는 마량의 눈썹이 하얗다는 것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리고 고향에서부터 그 형과 버금가는 재주를 지녔다 인정받으며, 특히 병법에 뛰어났던 다섯 형제 중 막내가 마속이에요.
백미
白 : 흰 백 眉 : 눈썹 미
: 흰눈썹. 즉 여럿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
보통 인물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는 것이 마속을 알게 된 제갈량은 밤낮으로 옆에 끼고 살 정도로 아꼈다 하고, 특히 병법에 뛰어났던 것도 있어서 참모로 삼았죠. 게다가 바쁜 일과 중에서 병법을 논하는 것 외에도 사사로이 대화하는 것도 좋아했다 해요. 유비에게 있어서 관우, 장비가 제갈량에게 있어서는 마량, 마속이었을테니 그 끈적거림은 더할 게 없었을 것 같죠?
마속의 인물됨을 알 수 있는 이야기 중 하나로,
요즘도 어떤 의미에서는 별로 달라진 건 없지만, 난세에는 사람 한 번 잘못 보면 자신의 죽음이나 혹은 자신의 세력이 한순간에 망할 수도 있어요. 나이를 먹고 경험이 쌓이면서 실전으로 단련되어 타고난 것에 더해 감각적으로 뛰어나 져서, 사람 보는 눈 하나는 신의 경지에 오른 유비는 마속을 그렇게 좋게 보지만은 않았어요.
그래서 유언을 남길 때 마속에 관한 말도 한마디 하는데, 여기서 마속에 관한 고사성어가 먼저 하나 생기게 돼요.
언과기실
言:말씀 언 過:지나칠 과 其:그 기 實:열매 실
: 말이 실제보다 지나치다.
"마속은 말이 실제보다 지나치게 앞서 크게 쓸 인물이 아니니, 그대가 깊이 살피시오."
일반인이어도 할 말이 어마하게 많을 죽을 순간에, 한 나라의 황제라는 사람이 굳이 특정 인물을 언급했다는 것은 제갈량이 정말 얼마나 아꼈는지를 대변해 주는 것 같아요.
하지만 실속 없이 요란하기만 한 빈 깡통에 비유를 하다니... 그렇게 아끼는 걸 알고 있으면 조금은 간접적으로 말해줘도 괜찮지 않나 싶은데, 어지간히도 걱정이 될 수준이었나 봅니다.
당시 상황을 보면, 촉나라는 건국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삼국지의 3대 대전으로 유명한 이릉대전에서 유비가 대패한 후 사망하게 됩니다. 근데 뭐가 안 되려고 하면 죽어라 안된다고, 건국 핵심 멤버이자 의형제인 관우의 죽음으로 일으켰던 이릉 전투에서 결국엔 유비까지 목숨을 잃게 되자, 나라의 기둥을 잃게 된 촉나라는 여기저기서 권력을 잡기 위해 일어나는 세력이 있었을거구요.
게다가 3대 대전으로 유명한 큰 전투인 만큼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인재와 병력, 그리고 재정적으로 막대한 손실까지 입게 되었을 거구요, 설상가상으로 이 전투 전후에 집중되어 나라를 이끌어갈 만한 거물급 인재들이 줄줄이 죽거나 항복을 해버렸어요.
이런 대환장파티를 하고 있으니 당시 위나라에서 촉은 끝났다라고 판단하여 오나라 공략에 집중했던 게,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겠죠. 하지만 이런 대혼란을 수습한 것에 더해, 오히려 5년 만에 전쟁이 가능해질 정도로 끌어올린 제갈량의 능력으로 촉나라는 천하평정의 발판을 마련하게 됩니다.
근데 촉나라가 이 전쟁을 치루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있었는데, 강대국 위나라의 입장에서도 촉나라를 공격하지 못하는 원인 중 가장 큰 원인은 서로를 갈라놓고 있는 산맥 때문이었어요. 이 진령산맥을 한 번 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어마어마 하기 때문에, 촉나라는 훨씬 약소한 국가임에도 침략을 당하지 않았던거죠.
천하의 조조도 포기하게 만들어버렸던 산맥, 계륵이란 말이 나온 원인이기도 하답니다. 선명하게 보이는 산맥의 보호를 받고 있는 땅은 너무 탐나지만, 막상 먹으려니 그에 대한 부담이 너무 커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자, 조조는 먹고있던 닭갈비와 같다고 느낀거죠.
계륵
鷄 : 닭 계 肋 : 갈비 륵
: 닭갈비. 즉, 먹기에는 양이 너무 적고 버리기에는 아깝다.
용의 발톱 - 제1차 북벌
제갈량의 위나라 공략 중에서는 1차 북벌이 가장 유력했어요.
그도 그럴 것이 유비가 죽고 난 후엔 위나라가 촉나라를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고, 덕분에 허를 찌를 수 있었던 것과 다른 북벌에 비해 차분하게 오랜 기간 준비해왔고, 위나라의 황제가 죽은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은 어수선했을 틈을 타 생각도 못 하던 코스로 모든 것을 때려 넣어 혼신의 일격을 날리려는 1차 북벌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가 맞겠죠.
어마어마한 산맥탓에 원래부터 수비하는 쪽이 유리하긴 해도, 한 번 전쟁 준비를 할 때마다 나라가 휘청거릴 정도의 촉나라 입장에서는 (이후 실제로도 그랬지만) 위나라가 국력 차이를 이용하여 단순히 수비만 하더라도 소모전은 굉장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고, 그걸 당연히 알고 있을 제갈량이 이 기회를 제대로 살리고자 아마도 최고로 고민하고 심혈을 기울여 신중하게 정말 많은 준비를 했을 이 전투는, 촉나라를 인재도 물자도 없는 약소국이라 신경 쓰지도 않던 위나라의 입장에서 제대로 대처할 수가 없었어요.
최단코스로 적과 마주칠 수 있는 레드오션. 일단 최단코스라는 이점을 살려 극악의 산길을 넘어갈 수 있고, 한 박자 쉬고 그 후를 진행할 수 있어 가장 무난하여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코스겠죠. 그러다보니 어느정도는 대비를 해뒀을 가능성이 가장 높았을거에요.
이왕 하기 힘든거 한 방에 가자, 라는 느낌의 퍼플오션은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코스에요. 성공할 시에는 한 방에 중심지역으로 들어갈 수 있지만, 대비해둔게 있다면 손도 못쓰고 당하며 역으로 회복할 수 없는 데미지를 입을 수 있는 입장에 처할 수 있어 많은 준비가 필요하면서도 성공은 어려운, 가장 큰 도박 코스입니다.
블루오션은 가장 먼 길로 돌아가야 하는 코스지만 그래서 반대로 최단코스처럼 예상할 수 있는 코스가 아니고, 기본적으로 가장 난코스인 산맥을 넘어갈 필요가 없으면서, 게다가 성공할 시에는 앞으로의 전쟁을 치를때마다 압도적인 상태에서도 함부로 건널 생각을 못하는 말도 안되는 높이의 산맥을 넘을 필요가 없는 부분이 생기게 되요.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보급의 문제를 가장 확실하게 해결할 수 있게 되면서, 그만큼 틈이 보일 때마다 공격하기 쉬워지고, 반대로 지키는 입장에서는 그만큼 시달리게 될 수 밖에 없는 코스입니다.
제갈량은 예상할 수 있는 레드오션, 일단 미개척지인 퍼플오션이 아닌, 발상의 전환을 통하여 아직은 예상한 사람이 없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 낼 수 있는 블루오션을 개척하고, 거기에 레드오션으로 사업을 시작하려는 척 블루오션으로 사업자등록을 하고 있었으니 시원시원하게 밀고 들어가며 성공적으로 진행되는 듯 보였어요.
하지만 결국,
제갈량이 가장 불안해하며, 그리고 이 블루오션 성공의 핵심 아이템이었던 가정이라는 지역을 지키는 데에 마속을 보낸 것에서 창업을 해보기도 전에 순식간에 망하고 맙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요?
용의 눈물 - 유래
마속은 실전 경험이 없지만 지식은 빠삭한 만큼, 그리고 제갈량의 총애를 받는 유망주인 만큼, 자부심과 자만심 또한 굉장히 컸을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제갈량이 임무를 맡기며 안절부절하며 하는 걱정을 크지 않게 생각하고, 오히려 내 능력으로 그 정도도 못하겠냐, 라며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자처합니다.
그렇게 임무를 받고 떠난 후, 현장에 도착한 마속은 어떤 생각에 확신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그러면서 제갈량의 지시를 무시하려는 때,
재차 제갈량의 지시대로 중요 길목을 장악해야 한다고 끈질기게 설득하는 실무 경력자 왕평의 말을 듣지 않고, 고지대 점령의 이점을 말하며, "그러니 공부를 못하지." 하면서 산으로 가자는 고집을 꺾지 않습니다.
행정관으로써 우수했고 참모로써도 부족한 인물은 아니었지만, 삼국지를 아끼는 사람이라면 매년 5월 가정의달에 한 번씩 떠오르는, 오직 그곳에 산이 있었기에. 촉에서 가장 산을 사랑한 남자. 등산왕 마속의 탄생이었어요.
하지만 마속의 생각과는 다르게 위나라 군은 그렇게 열정적이지 않았죠. 위나라군은 전투를 벌이기 위해 산을 오르기보다, 단순히 밑에서 기다리며, 산 밑을 포위하며 물을 길어먹을 길을 끊어버리고, 산기슭에 불을 놓아주는 것을 하이라이트로 확실하게 말려 죽여버립니다.
결과적으로만 봤을 때, 전쟁은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는거라 패배의 책임을 묻기에는 어려움이 있고, 능력 부족으로 인한 실패라면 다음부터는 중요하게 사용하지 않으면 되고 책임은 오히려 지휘관에게 더 크게 있는 것이겠지만, 자신의 지식만 너무 과신한 마속은 독단으로 고집을 부리며,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식수 확보를 포기하고,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정상적인 정신상태에서는 말도 안되는 선택을 하며, 국가에서 진행하는 가장 큰 일을 스스로 떠맡았음에도 명령을 고의로 어기는 상식 밖의 잘못을 하여, 이 일로 인해 촉나라는 전쟁을 포기하고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어요. 단 한 번, 단 한 군데에서의 실수가 전반적인 전략까지 뒤엎어버리게 된 것이죠.
많은 희생을 치르고 돌아와 겨우 사태를 수습한 후, 제갈량은 마속의 죄를 묻습니다. 아직 천하가 평정되지도 못했는데 유능한 인재를 버리는 건 아까운 일이라며 말리는 사람에게도, 오히려 북벌이 이제 막 시작되었으니 앞으로 있을 싸움에 있어서 법과 규율을 엄격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신상필벌
信 : 믿을 신 賞 : 상줄 상 必 : 반드시 필 罰 : 벌줄 벌
: 상을 줄 만한 자에게는 반드시 상을 주고, 벌을 받아야할 사람에게는 반드시 벌을 준다.
일벌백계
一 : 한 일 罰 : 벌줄 벌 百 : 일백 백 戒 : 경계할 계
: 한 사람을 벌주어 백 사람을 경계한다. 즉, 한 가지 죄 혹은 한 사람을 벌함으로써 여러 사람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결국, 그 책임을 물어 형제와 같이 지내고 자식과 같이 아꼈던 마속을, 사적인 감정을 배제하고 처형하게 됩니다. 총사령관으로써 마속을 기용한 것과 전쟁 패배 책임을 본인에게도 물어 자신의 계급을 3단계 강등시키기도 하구요.
읍참마속
泣 : 울 읍 斬 : 벨 참 馬 : 말 마 謖 : 일어날 속
: 울며 마속을 베다, 즉 공정한 법 적용을 위해 사사로운 정을 포기하다.
요즘은 큰 목적을 위하여 자기가 아끼는 사람을 버린다는 뜻으로 쓰인다네요. 뉘앙스의 차이가 있는 것 같은데, 그냥 비슷하게 받아들여도 될까요. 아끼는 사람을 포기하는 것이 객관적인 공정함을 위해서인가와 주관적일 수 있는 큰 목적을 위해서인가는 좀 다른 거 같은데...
제갈량은 상벌은 원한을 피할 수 있는 것이며 나라를 부흥시킬 수 있는 것이라 하면서, 상은 공을 세우도록 장려하고 벌은 간사한 것을 금하기 위한 것이라 하여, 상을 내릴 때는 원수를 가리지 말아야 하고, 벌을 줄 때는 친척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고 했어요.
왜 그랬을까하는 이 불가사의에 관하여, 그 책임에 대해 여기서부터는 개인적인 생각인데, 그래서 최종적인 실패의 원인이
가정을 잃은 마속에게 있냐, 총사령관인 제갈량에게 있냐
일단 제갈량이 지시한 대로라면 마속은 기다리고 있으면서 들어오는 적을 방어만 하면 되는 거였어요. 성 안에 있는 병사를 향해 위나라가 자랑하는 기병은 그렇게 쓸모가 있지는 않죠.
하지만 그 길목이 열리는 순간, 뒤에 펼쳐져 있는 평지에서의 싸움은 병사 수에 있어서도 위나라가 앞서게 되구요. 장소 자체도 기병 위주인 위나라에게 유리한 장소가 될 수밖에 없으니, 제갈량은 그렇게 몇 차례에 걸쳐 방어에만 힘쓰라고 말했던 것 같아요.
마속은 무슨 생각이었을까
전투에 있어서 고지대 점령의 이점은 어린아이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하게 보이는 것이 사실이죠.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보이듯, 남들보다 똑똑하다 인정받고 또 본인이 그걸 알고서 느끼고 있는 사람들은 고집 센 사람들이 많은 것 같죠?
온갖 전략들이 머릿속에 들어있고 아직은 젊은 마속으로써는 욕구불만이 생겼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쩌면 머릿속에 들어있는 사공이 많으니 마속은 산으로 갔을 수도 있겠죠.)
그리고 어떤 것에서든 첫 경험은 자신에게 큰 의미를 가지게 되는 거니까. 제대로 된 첫 실전에서 방어나 하는 수동적인 자세로 임한 굳히기보다, 공격하는 적극적인 자세로 승리를 거두는 게 훨씬 값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을 수 있구요.
선택은 산으로.
남안(南安), 천수(天水), 안정(安定) 세 군(郡)이 위(魏)를 배반하고 제갈량에 호응하니 관중(關中)이 진동했다. - 제갈량전
마속이 상대하게 될 위나라의 장합이 향하고 있는 곳은 현재 우수수 항복을 한 상태라, 한시라도 빨리 가야 하는 장합의 입장에서는 초조한 마음에 급해질 수밖에 없겠죠. 게다가 마속에게 부여된 임무가 사실상 길목을 잡고 제갈량의 본대가 올 때까지 시간을 끄는 거였고, 수많은 전투를 치뤄온 장합이 그걸 모를리가 없었을거에요.
근데 마속은 실전 경험없는 어린애가 "여기라면 널 이길 수 있어."라는 느낌의 굳이 거쳐갈 필요도 없는 숲이 무성한 외떨어진 산꼭대기에 올라가 있으면 "시간 안 끌고 싸워준다면 나야 좋지." 라던지, 혹은 "전쟁이 뭔지도 모르는 신생아가 거기 있으면 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보지? 오냐, 어디 한 번 해보자." 같은 느낌으로 화가 난 장합이 밀고 올거라는 생각이었을까요.
수 많은 싸움을 해오며 자신과 싸움에 임할 때는 진지하고 성실하게 덤벼오길 바라는 자존심을, 일부러 바보같은 짓이나 아니면 "내가 조금 더 유리하면 이길 수 있어!" 같은 도발을 하면 넘어올거라는 감정을 건드리는? 선택이었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럴 경우 일부러 사지로 몰아넣은 자신의 병사들이 일당백이 되어 싸우면 하나라도 살려보내면 힘들어질 위나라가 자랑하는 기병을, 지리적 우위를 선점할 수 있는 곳에서 활약할 수 있게 해주는게 아니라 불리한 지형에서 확실하게 처치할 수 있다라던지, 결국 산으로.
단시간에 승부를 보려고 따라 올라올 수밖에 없는 장합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쳐 박살을 내버리면, 산전수전 다 겪은 백전노장 장합을 상대로 지키면서 버티는 게 아니라 죽이거나 어쩌면 사로잡을 수 있다, 같은 생각이 아니었을까 해요. 장합은 마속을 빈깡통에 비유했던 유비가 가장 두려워했던 장수이기도 하니까요. 마속 입장에서 더더욱 욕심이 났을 수 있겠죠. 첫 경험에 이보다 짜릿하고 큰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까요.
정석으로 승부하는 것보다 남들이 선택하지 않은 길을 걸어 성공한 사람이 더 찬양받는 건 어느 시대나 같겠죠. 다수의 사람이 묻어가는 상식적인 선택은 승률이 높을 수 있겠지만 그만큼 성공은 당연한 거고, 반대로 소수의 사람이 거는 도박과 같은 선택은 승률은 낮아지고 실패가 당연한 거라 여겨지는 것이 보통이니까요.
정석에 대해서는 빠삭한 만큼, 어느 정도 승률을 높이는 정석과 적절히 섞은 응용 버전으로 실천해보려던 게 아니었을까 싶어요.
고지대 점령 정석과 감정을 이용한 역습의 응용
이렇게 했어야돼 저렇게 했어야돼 하면서 나중에 가서 결과를 보고 말하는 건 쉽지만, 그 순간 선택을 할 때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요. 결국 수를 너무 멀리 읽은 나머지 제일 먼저 둬야 할 수를 보지 못해서, 신의 한 수가 아닌 돌이킬 수 없는 악수가 되어버렸지만.
성공한다면 이 중책을 맡기는 것에 반대했던 사람들도 그 능력을 인정하고, 앞으로 조용하게 만들 수도 있었구요. 삼국의 형세가 바뀌었을 수도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제갈량이 아꼈던 재능을 후에 마음껏 펼칠 수 있었겠죠.
근데 사실 누구도 생각 못할 기발한 아이디어라는 게, 단지 누구도 실행 안 했을 뿐인 버려졌던 선택지일 수도 있거든요. 과정이 아닌 결과에 따라 변하는 말이라... 한번쯤은 그런 경험있잖아요?
제갈량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첫째로, 가정이 무너지자 별다른 저항도 못하고 빠르게 진행된 퇴각에 대하여
너무 신격화되어 있어서 생각하기 힘든데 일단 제갈량도 사람이라 생각해요. 그리고 사람이 심혈을 기울여 투자한 것들은 그만큼, 적당히 한 것을 잃었을 때보다 입을 멘탈의 타격이 상당히 크다는 건... 멘탈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아무리 작은 것이더라도 눈앞에 일을 온전히 처리하기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일반인은 사소한 거라도 손부터 떨릴 테니까요.
하물며 그 후로 한 번도 성과다운 성과를 얻은 게 없는 북벌의 결과도 말해주지만, 그 당시 하늘이 주신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모든 것을 다 때려 박아서 했던 도전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망가진다면... 뭐 사실 안 그래도 기습의 이점을 잃고, 부족한 병사 수로, 병종의 불리함을 안고, 평야에서 지리적 유리함도 없이, 남의 땅에서 보급도 힘든 상황에, 장기전으로 가는 건 누가 봐도 아니겠죠.
둘째로, 왜 마속이었을까?
본인도 죽어라 고생해서 준비해 놓은 밑그림을, 작품이 아닌 쓰레기로 만들 사람에게 맡기고 싶진 않았을 거라 생각해요. 고생의 시간을 떠올리면 나름 냉정하게 생각도 할거구요.
사실 아직은 탁상공론에만 강한 마속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성격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있었을 것도 같은 게, 단순히 틀어막고 있으라는 것을 너무 심각하게 걱정을 했어요. 중요한 만큼 노파심에서 했던 행동이겠지만, 똑똑하고 그걸 본인도 느끼고 있을 사람에게는... 이게 오히려 자존심을 건드려서 기발한 꾀를 내어 나의 능력을 보여주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겠죠.
결국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마속을 선택했지만, 마속에게 몇 번을 당부하고 변수를 고려한 경험이 풍부한 왕평까지 부장으로 붙여줬던 걸 보면 믿음이 그리 크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갈량도 사람인지라 공정하게 모든 걸 처리했다 하더라도 사람으로서 그랬다는 거지, 기계로써 정밀하다는 건 아닐거에요. 내가 아끼는 아이는 누구든지 나처럼 봐주길 원하는 게 사람 심리겠죠. 성격과 코드가 잘 맞는 사람, 질문 잘하고 성적 좋은 우등생. 그런 아이는 특히나 제갈량같은 모범생 타입의 선생님에게는 누구보다 이뻐 보일 수 있고, 그래서 편애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근데 쟤는 교실에서 공부할 때만 잘한다며 사실은 별거 아닌 사람이라고 폄하한다면, 이뻐하는 이유는 그냥 감정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객관적으로 평가될 수 있는 부분, 그러니까 취직해서 실무를 맡더라도 충분히 능력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질 것 같아요.
흔히 보이는 인재 발굴에 대해서도 보면, 주변인들은 욕만 하다가도 결국엔 엄청난 재능을 찾아냈다며 말 바뀌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으니까. 그래서 실무경력과 노하우가 응축된 위연이나 오의를 보내야 한다고 다른 사람들도 모두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그곳에, 마속을 보내서 그 능력을 인정받게 하고 싶었을지도 몰라요.
사람이 부족했던 것도 있었을거구요. 그 중요한 역할을 맡기기에 적합한 인물로 조운부터 위연과 오의같은 장수도 있었지만, 그 후보들에게 맡겨진 상황에 따라 맞춰가는 임무가 사실상 마속에게 맡겨진 임무보다 더 어려운 임무이기 때문에, 마속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특히 남의 땅으로 원정을 나간 이상 실질적인 지형에 대한 이해도 부족한 상태에서, 신생아에게 맡길 수 임무는 하나죠. 그나마 임기응변이 덜 필요한 수비. 하지만 더 쉬울 수 있는 임무일진 몰라도 가장 중요한 임무이기 때문에, 딱 안성맞춤이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어떻게 보면 본인도 절실한만큼, 아들과 같은 마속이 자신만만하게 말한 만큼,정말 믿고 싶었던 것뿐일지도...
공정성보다도 이 일화에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 준비한 프로젝트를 진행할 사람은 당연히 신뢰하는 사람이겠지만, 내가 그 사람의 어떤 부분을 신뢰하는 것인지 꼼꼼하게 체크해 볼 것. 성격과 코드는 맞지만 능력이 없거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람이라면, 일을 진행하는 내내 나의 마음은 즐겁고 편할지 모르나 결과까지 그럴지는... 나와 코드가 맞고 성격이 맞아서 신뢰하고 싶은건지, 그 사람의 재능과 능력을 신뢰하고 있는 것인지, 성공률과 나의 멘탈을 위하여 0부터 100 사이의 어딘가에서 일의 중요도와 비슷한 숫자를 찾아서 선택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 무언가를 준비할 때는 제갈량처럼 철저하고 신중하게 할 것. 역사적으로도 비길 인물이 거의 없는 천재가 빈틈없이 꼼꼼하게 준비한다 해도 무조건적인 결과가 보장된 게 아니었어요. 하물며 평범한 사람이라면... 제갈량의 일생은 성공의 연속은 아니었지만, 묵직한 노력으로 만들어진 브랜드라고 생각해요. 실패했다고 거기에 멈춰 서지 않았기 때문에 브랜드 가치가 올라갔다고 생각합니다. 일단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할 수 있는 노력을 하고 나서도 보장된 결과가 아닌 하늘에 맡기고 기다리는 자세. 그래서 제갈량은 시대를 초월한 브랜드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 인생은 실전이다. 단 한 번의 객기나 가벼운 마음이 나와 내 주변까지 망가뜨려버릴 수 있다는 것. 번뜩이는 아이디어도 물론 중요한 요소지만, 그걸 살리기 위해선 업계에서 오랫동안 실무경험을 쌓아온 사람의 안정적인 노하우 위에 쌓여야 정말 성공으로 갈 수 있는거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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