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인사대천명은 재능이나 집안의 수저를 처음부터 전부 지닌자의변명은 아닐 거라 생각해요. 제갈량 본인이, 혹은 적어도 나관중이 제갈량의 인생을 표현한 말이라는 생각도 드는 말이니까요.
유래는 적벽대전에서 나오는 에피소드
제갈량이 조조가 도망갈 루트를 예상하여 각각의 장소에 적합한 인물들을 파견하고, 결국 마지막에 유인될 화용도로, 마무리 지으러 갈 인물을 관우로 정한 일화에서, 걱정스럽게 말하는 유비를 달래주며 한 말에서 나온 말이에요.
유비가 "관우는 의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 아마도 전에 입었던 은혜 때문에, 만약 조조가 화용도로 가더라도 그냥 보낼 것 같은데 어쩌겠냐"라며 걱정하는 말에, 제갈량이 "밤에 살펴본 천문에서 조조는 아직 죽을 운이 아니라 관우에게 있어서 은혜를 갚을 기회를 준 것입니다." 아무리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더라도 목숨은 하늘의 뜻이라고 대답해 주며, 결국 제갈량의 입장에서는 모든 수단을 닦아두고, 결과는 하늘에 맡기겠다고 한 수인사대천명.
이것이 유래가 되어 진인사대천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게 능동이냐 수동이냐에 따라서 나뉜다고도 하던데... 그 기준도 애매하고 찾기 힘들구요. 사실상 뜻은 같기 때문에 그냥 유래가 그렇다는 것만 알고 있어도 될 것 같아요.
수인사대천명
修:닦을 수 人:사람 인 事:일 사 待:기다릴 대 天:하늘 천 命:명령할 명
진인사대천명
盡:다할 진 人:사람 인 事:일 사 待:기다릴 대 天:하늘 천 命:명령할 명
: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하고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
갑자기 들게 된 생각인데...천문이 안 좋다며 북벌을 말릴 때에도, 그리고 그 자신도 이미 촉한의 기운이 기울고 있음을 알고 있었을 텐데도, 그 운명을 사람의 힘으로 바꿔보고자 죽는 순간까지 북벌을 감행하며, 누구보다도 천문에 거스르려고 노력했던 제갈량이라, 그 끈기 있는 노력에 더더욱 끌림을 느끼는 입장에서, 왜 하필 이 부분에서는 그렇게 아싸리 납득해버리고 다른 인물도 아닌 조조를 일부러 보내준다는 설정을...
또 하나의 일화
비슷한 뜻으로 쓰이는 말 중에 모사재인성사재천(謨事在人成事在天)이라는 성어도 있어요.
이것도 제갈량에게서 나온 일화에요. 제갈량과 흔히 라이벌로써 비교되는 사마의.
그 사마의와의 전투 중 호로곡 전투에서 나온 말이에요. 말이라기보다 한탄, 탄식이라고 해야 옳겠죠.
이야기는 삼국지의꽃, 그리고 역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북벌. 그 중 호로곡 전투에서, 둘은 서로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던 중 결국 제갈량은 사마의를 호로곡이라는 계곡으로 유인하는 것에 성공하고 불을 질러 몰살시키기 직전이었어요. 그런데 그 때 갑자기 하늘에서 비가 내려 사마의의 군대가 극적으로 구사일생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죠. 이에 제갈량은 하늘을 우러러 탄식했다고 하는데,
"일을 꾀하는 것은 사람에게 달렸으나, 일을 성공시키는 건 결국 하늘에 달렸구나."
모사재인성사재천
謨:꾀 모 事:일 사 在:있을 재 人:사람 인 成:이룰 성 事:일 사 在:있을 재 天:하늘 천
: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지만, 그것을 이루는 건 하늘이다.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요.
이 일화는 (일을 꾀하는 것) 전략을 잘 짜고 아무리 상대를 압도하고 있더라도, (일을 이루는 것) 하늘이 돕지 않으면 실패한다,라는 화용도에서의 일화와 반대되는 뉘앙스로 사용되었네요.
노력한 것은 반드시 보답받고 싶어 하고, 오히려 노력하지 않은 곳에서도 내가 얻을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하고 요행을 바라며 두리번거리는 인간의 본성을 좌절하게 만드는듯한
그래서 들게되는 쉬운 생각은, 일단 노력해봐, 될지 안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해봐라던지,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뭐 할 거냐 등등 아무리 그런 말을 듣더라도, 결국 내가 노력을 하던말던 결과는 정해져 있다면 차라리 마음 편하게 가만히 있고 싶다는 그런 게으른 마음은...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는 거겠죠?
게다가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미 타고난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나, 다이아 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 등과 출신성분을 바꿀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그리고 그것들이 확실한 디딤판이 되어서 부서지기 쉬운, 쉽사리 가지 못할 위험한 길을 보다 편하고 안전하게 해 주어서 그걸 밟고 탄탄하게 힘들이지 않고 걸어가는 것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자면, 더더욱 아무것도 안 하고 포기하고 싶어지는 게 참... 역시 상당히 거부감이 드는 말인 것 같아요. 애당초 보장되어 있지 않은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하라니, 안 그래도 난 만성 휴식 부족이거든...?
그래도 조금 깊게 생각해본다면, 화용도 사건과 호로곡 전투, 두 가지 모두 삼국지연의에서의 창작 에피소드라고 해요.
실제로 있었을 수도 있다 다만 기록이 없을 뿐이라던지, 또는 창작인 건 알겠는데 만약에 이랬다면 어땠을까, 혹은 왜 그렇게 허술하게 창작했을까라던지, 같이
어쨌든 여러 가지 나누는 작업은 조용한 곳에서 오랜 시간 한 가지 주제로 답이 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싸움으로 번지지 않을 씹을 거리가 필요한 술자리에서, 그리고 결국엔 역사학자들에게 맡겨두고.
이유를 생각해보면, 말로 전하면 간단명료할 것을 그렇게만 하지 않은 건 역시
재미없고, 이미 알고 있다 생각되고, 단순한 잔소리로 밖에 느껴지지 않아서, 듣는 순간 또 어딘가에 묻어놔 버리고, 떠오르지도 않는, 그래서 행동은 계속 반대로만 하던지, 너무 흔하고, 들을 때 부정적인 생각도 들 수 있는, 진부한, 어쨌든 재미없는, 시대를 관통하는 진리의 메세지를 보다 쉽고 순간순간 그 말을 제대로 떠올리고 한 번쯤 다시 생각해보게 하기 위해서 재미있는 에피소드 속에 녹여낸 것 같아요.
그것을 굳이 직업도 아닌데 진짜와 가짜로 진지하게 나누기도 하던데... 그 자체가 모독인 것 같아요. 게다가 소설에서 나온 말이라 생각할 가치도 없어,라고 깎아내리는 사람도 있던데 긴 세월 사라지지 않고 줄곧 내려오면서 누군가에겐 어디선가 들어본 좋은 말, 또 누군가에겐 좌우명 또는 가치관으로까지 여겨지며 남겨진 말이 결코 가볍게 받아들여지면서 허구라고 무시할만한 건 아니겠죠.
우리는 이야기로 만들어진 인생의 길 중 하나가, 나아갈 길로 받아들여도 좋은지 정도만 판단하면 될 거라 생각해요.
내가 얻을 때는 정말 힘들었는데 남이 얻는 걸 보니까 너무 간단하게 얻었다며 질투하고, 타고난 무언가를 가진 사람들을 뒤에서 이야기하며, 나는 그게 없어서 안된다는 말로 쉽게 다른 무언가의 탓으로 돌리고, 그렇게 해보기도 전에 그냥 승산이 없어 보여서 이것저것 재보기만 하는 우유부단함을, 나름의 경험에 기초한 계산이라며 싸워보기도 전에 포기하는 것이 최고의 선택이라고
뭘 해도 안된다고 비관적인 시선으로 남은 앞으로의 인생을 보는 관점을내려두고, 생각하기 쉬운 쪽으로만 생각하는 걸 잠깐 내려두고,
나의 준비와 노력만 큰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한 번쯤은 내가 느끼지 못한 보이지 않는 남들에게 감춰져 있는 수라장도 생각해보고, 타고난 무언가를 가진 사람들이 지치거나 우월감에 젖어서 잠시 멈춰 섰을 때, '내가 걸어갈 수 있다면 그 차이를 좁힐 수 있지 않을까',라고도 생각해보고, 대충 했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전쟁 상황 속에서 그 최선을 다해 짜낸 지혜가,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도, 정말 사력을 다해보고 그런 중에 안 되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을 한가운데 두고, 그건 내 잘못이 아니고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며, 내려놓을 수 있는 큰 그릇으로 키워보는 건 어떨까요. 신인지 사람인지 구별이 안 되는 제갈공명처럼.
이런 마음가짐이었다면, 어떻게 해서 끈질기게 운명에 저항하려고 할 수 있었는지 조금은 이해가 갈 것 같아요. 양파껍질 까듯이 하나하나 알아갈수록, "얜 그래서 한 게 뭔데?" 라는 생각보다 하나하나 근본적인 마음가짐의 품격이 너무 고급스러워서 비판할 수가 없어지네요.
무엇보다, 탓만 하다가 끝내기에는 너무 비참하고 아까운 나의 시간이잖아요...
기회의 여신의 앞머리를 잡아라 라던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와 같은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찾아온다는 말과 같은 말 이겠죠. 스스로 돕지 않은 자에게는, 잡히지 않을 빠르게 달아나는 대머리만 보일 뿐.
진인사 = 할 일을 다한 = 준비된 자가
대 = 기다림 = 끝에 얻는 것은
천명 = 하늘의 뜻 = 기회를 내려주는 것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몇 가지 경험에서 나의 땀이 섞인 것은 완벽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의 결과만 나오고도 만족스러웠던 경험이 있을거에요. 반대로 별다른 노력 없이 얻어지는 것에서는 묘한 괴리감이 느껴질 때도 있었을거구요. 그리고 그 경험들이 그 후의 행동을 결정했었겠죠?
열심히 노력한다는 게, 그렇게 살아간다는 게, 우리가 원하는 결과보다도 더 중요할 수 있는, 후회 없는 기분을 남게 한다는 것. 일상의 충실함 속에 위대함이 깃든다 생각해요.
하늘도 도와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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