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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삼국지 인물 일대기, 상산 조자룡

by HCHM 2021.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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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상산 조자룡이다!"

 

 

조운 자룡

첫인상의 중요성, 초두 효과라고 하죠. 우리는 0.1초도 안 되는 아주 짧은 순간에 호감도와 신뢰도를 평가하고 외모, 목소리, 어휘 순으로 첫인상은 3초면 결정된다 해요. 

그래서 저는 역사 속 인물을 판단하고 평가할 때 있어서, 이름이 주는 효과도 무시 못한다고 생각하는데, 첫 만남에서 첫인상이 그 사람을 좌우하듯이, 역사 속 인물과의 첫 만남은 이름으로 시작되니까요.

 

 

그리고 그 때문인지 조운의 빠져나올 수 없는 매력은 초두효과에 의해 더 단단해지는 것 같아요. 삼국지 내에선 유일하게 고평가 되고 있는 장수 중에서도 흠잡을 게 하나도 없는 장수.

이름부터 구름 운 그리고 자룡... 멋있는 건 다 때려 넣어서 지어진 이름 같은, 태어난 곳 지명조차 뭔가 멋있게 느껴지는, 진정한 로망 그 자체, 촉나라의 오호대장군 조운.

 


 

 

조운은 현재 허베이성 쪽인 당시 기주 상산군 진정현 사람으로, 원래부터 유비의 사람이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조운은 신장이 8척에 용모가 웅장하고 위엄이 있어 출신 군에서 천거되었는데, 대의를 좇는 관리와 병사들을 거느리고 공손찬에게로 나아갔다. 당시 공손찬은 기주인들이 원소를 따르는 것을 심히 우려하였으니 조운이 귀부해 온 것에 기뻐하여 조운을 놀리며 말했다.
"듣기로 기주 사람들은 모두 원씨를 원한다던데 그대는 어찌 홀로 마음을 돌리고 미혹되어 이에 반하는 것이오?" - 조운 별전

처음에 조운은 기주 출신임에도 원소가 아닌 공손찬 밑으로 들어가는 선택을 하는데요. 이게 당시 대세 세력으로 자리 잡은 원소 밑으로 가지 않고 공손찬을 선택한 건데, 이 선택은 공손찬 본인조차도 어이가 없었는지, 기뻐하고 한편으로는 놀리듯

"모든 기주 사람들이 원소를 원한다고 하는데, 넌 왜 혼자 정신줄 놓고 대세를 거스르려 하는 거냐?"라고 말한 것에서, 조운이 얼마나 의외의 판단을 한 건지 알만하죠.

조운이 대답했다.
"천하가 흉흉하여 누가 옳은지 알 수 없으나 백성들이 거꾸로 매달리는 것과 같은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여 어진 정치가 있는 곳을 따르기로 하였으니, 그런 뜻에서 귀부한 것으로 원공(원소)을 소홀히 하며 명장군(공손찬)을 사사로이 따르자는 것은 아닙니다." - 조운 별전 

아마 그의 올곧은 성격으로 봤을 때, 그다지 어진 정치를 펼치고 있는 게 아닌 공손찬도 딱히 내키는 건 아니지만, 조금은 비겁해 보일 수 있는 방법으로 기주를 먹은 원소보단 낫다라는 판단이었을 것 같아요. 그리고 굳이 적을 만들지 않는 언행이 돋보이네요.

이후 어린 시절 같이 공부했었던 인연으로 공손찬에게 몸을 맡겨온 유비와 눈이 맞아, 두터운 신뢰를 받으며 평생을 함께하게 됩니다.


그럼 처음 조운이라는 얼굴을 보고 가장 먼저 들을 수 있는 목소리. 100만 대군 속에서 홀로 유비의 아들을 구출해 온 이 일화는 어디까지 믿어도 될까요?


 

조운의 실제 목소리는?

유비가 이미 지나갔다는 것을 듣고 조조는 정예 기병 5천을 이끌고 이를 추격했다. 하루 밤낮에 3백여 리를 달려 당양의 장판에 이르렀다. 유비는 처자를 버리고 제갈량, 장비, 조운 등 수십 기를 이끌고 달아났고, 조조는 그의 무리들과 치중을 크게 노획했다. - 선주전(유비전)

추격했던 병사가 100만은 아니라 뭔가 아쉬운 기분이 들기는 합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5천이라니... 그 수가 상상이 가시나요? 왕조차 체면이고 가족이고 정신이고 다 못 챙기고 도망가는 매우 위급한 상황이 만들어질 정도니까요.

소설에는 아무래도 극적인 요소가 많이 필요하죠. 소설을 읽어나가기 위한 원동력은 일단 재미니까요. 그래서 숫자 자체는 압박감을 표현하기 위한 소설 속의 장치일 뿐이라 생각해요.

그리고 사실 일정 수치 이상으로 올라가면 더 이상의 숫자는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 당시 그곳에서 시야에 들어오는 압박감은 비슷할 거라 생각되거든요. (물론 나관중도 100만은 확실히 좀 너무 했다 싶었는지, 조조가 화살은 쏘지 말라고 명령했다는 대목도 집어넣긴 했지만요.)

또, 5천에 뛰어들 수 있는 사람이 100만이라고 못 뛰어들까...

이때 조운은 홀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는데, 그래서 이것을 본 어떤 자는

조운이 이미 북쪽으로 떠났다고 말하는 자가 있었다. 유비가 수극을 내던지며 말했다.
"자룡이 나를 버리고 달아났을 리 없다." 얼마 뒤 조운이 도착했다. - 조운 별전

즉 정황상 남쪽으로 도망가던 입장에서 볼 때, 홀로 북쪽을 향해 달리고 있는 모습은 누가 어떻게 봐도 '혼자 살 길 찾아 떠나갔다.'라고 해석하는 것이 당연하겠죠. 하지만 유비는 이런 말을 하는 자에게 수극을 내던지며 "그럴 리 없다."라고 했다는데...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뿐일지도 모르지만,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몸을 먼저 챙기는 게 아닌, 의심부터 해야 할 상황조차 분명 무언가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만들고, 믿고 기다릴 수 있는 사람. 그렇게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유비가 당양 장판에서 조조에게 추격당해 처자를 버리고 남쪽으로 달아나자, 조운이 몸소 어린아이를 품에 안았으니 즉 유선이고, 감부인을 보호했으니 즉 유선의 모친이었으며 이들 모두 위난을 면할 수 있었다. - 조운전

그리고 이것이 가장 먼저 들을 수 있는 조운의 목소리. 당양 장판에서 유비의 아이, 즉 유선을 구출해 낸 실질적인 역사의 기록, 정사의 기록이에요. 

흘린 아이스크림에 몰린 개미떼 같은 적진에, 홀로 들어가서 왕의 부인과 후계자를 구해왔고, 특히 왕조시대에 이것이 실화라는 것은 조운 인생의 가장 큰 업적임이 틀림없죠.


 

 

이건 집에 있는 20년 정도 된 유물인 한국 뉴턴의 슈퍼 삼국지에서 가져와 봤습니다. 조운이 구출해 온 아이를 기뻐하며 받아주는 것이 아닌, 화를 내며 집어던졌다는 이 일화는, 삼국지연의 속 창작이라고 해요. 모티브가 된 건 수극을 집어던진 것이었겠지만 충분히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었겠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인물임을 부정할 수 없겠죠?

어떤 상황 속에서도 믿을 수 있는, 언제나 곁에 두고 잃고 싶지 않은 사람.


그런데 이 일화는 진위여부가 의심스럽다든지, 조운의 전투력이 너무 과대평가되었다는 말이 많이 보여요. 그 두 가지를 꼽자면,


첫째로, 100만이 아닐지라도, 5천도 또한 물리적으로 신빙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유비의 아들을 구한 것조차 사실인지 의심스럽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려는 사람들의 가장 위험하다 생각되는 부분은, 이 사람들은 논리 없이 삐뚤어진 시선을 팩트라는 말로 포장해서, 이제 막 흥미를 느끼고 알아가려는 분들께 주입하려는 거죠. 역사라는 것이 연구하는 여러 사람에 의해, 신빙성 있다 느껴지는 자료들 모아 끼워 맞추기 밖에 할 수 없는 것인데, 그 사이에서 설명할 수 없는 미스터리를 그것을 해낸 인물의 위대함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 편협한 시선과 애매한 지식을 가지고 비판이란 좋은 말로 트집을 잡으려고 하면, 결국 그 어떤 역사적 사실과 기록도 전부 거짓말이 될 수밖에 없다 생각해요.

이제 막 흥미를 가지게 된 사람에게, "야 그거 틀린 거고, 내 말이 맞아. 이건 아닌 게 확실해."라고 잘라버리며 분위기를 가라앉히는 건... 주변에 하나씩 꼭 있었던 것 같아요. 흔히 동년배나 윗사람들의 의도 파악을 전혀 못해서 점점 멀어지게 되며, 후배들에게 이것저것 잔소리하는 유형의 사람... 사실 뭔가 가르칠 입장이 되는 것도 아니면서.


이 부분은 자신부터 먼저 챙기는 것보다 유비를 향한 충심으로 행동한 것, 그래서 그곳으로 달려간 조운의 담력을 높이 평가할 부분이라 생각해요.


둘째로, 정사에도 나오듯 애를 품에 안고 나온 건 맞다. 감부인도 보호해서 위기를 넘긴 것도 맞다. 
근데 "어떻게 싸워, 말이 되냐." 결론적으로 싸움을 잘하는 건 아니다.

애를 품에 안고, 또 한 사람을 보호하면서까지 전투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대군을 뚫은 것도 아니고 전투 없이 데리고 돌아왔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력은 별거 없다.

전투가 없었다는 것은, 왕이 처자식조차 버리고 정신없이 도망가는 개판인 상황에서, 추격하는 정예병들과 마주치지 않고 지나갈 수 있는 길이 있었고, 그 길을 꿰뚫어 본 건 조운 뿐이이어서, 그 길을 따라갔더니 유선과 감부인이 있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도 마주치지 않고 지나갈 수 있는 길로 돌아왔다. (이게 무슨 말이지... 이런 길이 있으면 유비가 그런 모습으로 도망가진 않았겠지.....)

소설 속 화려함을 비꼬고 폄하하려다가 오히려 더 비현실적인 소설을 쓴 꼴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꾀에 제가 넘어간 꼴...

물론 창으로 찌르거나 칼로 쳐 죽인 조조 진영의 이름 있는 장수만 50여 명이라던지, 그래서 나온 '조자룡 헌 창(칼) 쓰듯 한다.' 정도로 연의에서 나온 만큼 화려한 전투는 불가능했을지 모르지만, 충돌이 없을 수는 없다 생각합니다. 전투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건 맞는데, 안 할 수는 없는 상황인 거죠.

5천의 정예 기병이라는 걸로 봐선, 게다가 급히 쫓아간 것으로 봐선, 조조의 최정예 기병부대 호표기일 가능성이 높을 것 같은데요. 호표기 입장에서 유비가 도망간 쪽에서 올라오는 기병을 보고 아군이라고 생각하기는... 또 마주쳐보니 적군 장수고, 그가 모시는 주군의 부인과 적자라면, 이 추격의 가장 큰 목적과 비슷한 정도의 상황을 마주치고 "네가 지금은 싸울 상황이 아닌 것 같으니까 보내줄게." 하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작정하고 하루 밤낮 3백 리(약 120km)를 달려온 정예병들이라면 더더욱 그렇겠죠.

그리고 적어도 그 수가 몇이던지, 이렇게 마주친 적에게서 지켜낼 정도의 실력이 있었다는 것이겠죠. 몇 날 며칠 지속돼서 낮에는 숨어있다가, 밤에는 살금살금 도망 나왔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니까요.

그래서 조운은 그 둘을 보호한다는 핸디캡을 안고, 적군의 정예병으로부터 지켜낼 수 있을 정도의 무력은 있었다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옳은 것 같습니다.

또한 생각해보면, 일분일초 단위로 생사가 바뀔 수 있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전쟁터 안에서, 수많은 전장을 누벼온 사람이, 최중요 인물 구출 목적을 가지고, 한가운데 눈에 띄는 길로만 가서, 모든 적군을 상대하며 돌진했을 거라고는 당연히 생각이 안됩니다. 

급박한 상황이지만 서로 연락하며 정확한 위치를 알고 그곳에 쓕 가서 쑉 빼오는 게 아닌 만큼, 찾는 도중 마주치는 적 그리고 다시 돌아가는 길에 마주치는 적과의 전투를 최소화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움직였을 거라 생각해요. 적어도 조운처럼 평소 상황을 냉정하고 침착하게 보는 인물이라면 말이죠. 

그래서 조운 입장에서 보면 어떨까요? 당연히 전투는 최소화하여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죠. 무력 과시를 위해 싸우다가 오히려 지켜야 할 것을 못 지키게 된다면... 최대한 적을 마주치지 않고 도망가는 게 최고의 선택인 상황이니까. 애당초 목적이 혼자서 조조 군을 전멸시키겠다, 같은 것이 아닌 태자 구출이니까요.


이 부분은 그렇게 화려하게 그리고 싶어 했던 후세가 받은 감동만큼, 급박한 상황 속 냉정함을 유지하며 적과의 전투가 최소화될 수 있는 루트를 찾아내는 판단력과 그 도중에도 마주친 적들에게서는 아기와 부인을 지켜낸 무용을 대단하다 여기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이 일화로 인해서 조운이 무언가 과대평가된 부분이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로망 그 자체거든요.


결론 : 아이가 타고 있어요.

타고 있으니까, 건들면 죽는다.

 


 

사생활을 엿볼 수 있는 처세

유비가 형주를 얻게 되었을 때, 조범이란 사람이 유비에게 항복한 후, 과부가 된 자신의 형수 번씨를 조운과 맺어주려고 했던 일이 있었어요.

굉장한 미인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입지를 위하여 유비의 최측근과 연을 만들어두려고 했던 것이었을까요? 혹은 다른 목적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여하튼 조운을 엮으려는 꿍꿍이였던 것이었겠지만,

조운은 강남을 평정하는데 종군하여 편장군이 되고, 계양 태수를 겸하여 기존의 계양 태수였던 조범을 대신했다.
홀몸이 된 조범의 형수 번씨가 뛰어난 미모를 가졌는데, 조범이 그녀를 조운에게 짝지어주려 했다. 조운이 사양하며 말했다.
"우리가 서로 성이 같으니, 경의 형은 내 형과 같소."
굳게 사양하며 허락하지 않았다. 당시 그녀를 맞아들이도록 권하는 사람이 있자 조운이 말했다.
"조범이 급박하게 항복했으니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없소. 천하에 여자가 적지 않소."
그리고는 그녀를 취하지 않았다. 과연 조범이 도주하였으나 조운은 조금도 연루되지 않았다. - 조운 별전

이 일화는 나관중에 의해 창작된 스토리도 있어요. 굉장한 미인이지만 아직 홀몸인 이유는, 번씨가 세 가지 조건을 갖춘 사람이 아니라면 절대로 시집을 갈 수 없다 했다는데,

첫째는 외모가 출중하고 풍채가 당당해야 하며, 둘째는 문무를 겸하여 그 이름이 천하에 알려진 사람이어야 하며, 셋째는 죽은 남편과 성이 같아야 한다고 했답니다.

그냥 조운을 세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한 문구네요.


처세에 관한 다른 한 가지 일화는,

그 이전에 하후돈과 박망에서 싸워 하후란을 사로잡았었는데, 하후란은 조운의 고향 사람으로 서로 아는 사이였다. 조운은 유비에게 그를 살려주도록 부탁하고, 하후란이 법률에 밝다고 추천하였으나, 조운은 그를 가까이하지는 않았다. - 조운 별전

얼마나 아름다운 여성이던지, 아는 사이던지, 먼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자신의 주변 인간관계를 깨끗하게 관리하는 사람. 이후에 쓸데없는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엄청나게 신중하고 사려 깊은 사람이란 것을 알 수 있죠.


또한 유비가 생각하기에, 도덕적으로 올바르고 그것을 실행시켜, 정의집행을 할 수 있을 거라 여겼던 인물은 조운뿐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요. 유비조차 어쩌지 못하고 있던 골칫거리를 조운에게 맡깁니다. 그리고 조운은 또 한 번 유비의 아들을 구해내는 업적을 세우게 되죠.

유비의 손부인은 손권의 여동생으로 교만하고 횡포하여 오나라의 관리와 병사들을 여럿 거느리고 거침없이 법을 어겼다. 유비는 조운이 엄중하니 필시 이를 제어할 수 있으리라 여겨 특별히 내부의 일을 맡겼다.
손권은 유비가 서쪽을 정벌한다는 말을 듣고 배들을 대거 보내 여동생을 영접하게 했는데, 손부인이 은밀히 유선을 데리고 오나라로 돌아가려고 하니, 조운이 장비와 함께 군사를 이끌고 강을 가로막고는 유선을 구해 돌아왔다 - 조운 별전

 

품성과 정치적인 시야

익주가 평정된 후, 이제껏 고생했던 촉나라의 신하들에게 땅과 집을 나누어주자는 회의가 열렸어요. 대다수가 받을만하다 여기며 내심 기대도 하고 있었는지, 다들 그러자고 하죠.

익주가 평정된 뒤 당시 사람들이 의논하여 성도의 집과 성 바깥의 과수원, 뽕밭을 제장들에게 나누어주고자 했다. 조운이 이를 반대하며 말했다.
"한무제가 집을 하사하자 곽거병은 흉노를 아직 멸하지 못했으니 집이 쓸모없다고 하였는데, 또한 나라의 적이 비단 흉노만이 아니니 아직 안락을 구해서는 안됩니다. 천하가 모두 평정될 때를 기다려 각자 고향으로 되돌아가 본래의 땅에서 농사짓게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익주의 주민들은 처음 전란을 겪었으니, 논밭과 집들을 모두 되돌려주고 생업에 복귀하도록 한 뒤에, 부역하게 하고 조세를 거둔다면 그들의 환심을 얻을 것입니다."
이에 유비가 이를 따랐다. - 조운 별전

하지만 조운만이 혼자서 자신도 충분히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상황임에도 "지금은 아니다, 그것은 옳지 않다."라고 말하는 모습.

최종적으로 유비는 조운의 손을 들어주게 되는데, 무장이 정치적인 자리에서 발언을 하고, 대세와 정면으로 반대되는 그 발언에 힘이 있는 것은, 역시 그만큼 공정하면서도, 사실은 인정하기 싫지만 누구나 동의할 수밖에 없는 미래를 위한 의견이었단 증거겠죠. 뛰어난 정치감각을 가지고 눈앞에 나의 이익만을 위한 침묵이 아닌, 대세와 충돌하더라도 소신껏 말할 수 있는 모습은 많은 생각이 들게 합니다.


큰 그림을 그릴 줄 아는 통찰력을 보여준 다른 일화에는, 관우의 죽음으로 복수에 눈이 돌아버린 유비가 오나라를 공격한 이릉대전. 이때부터 촉나라는 점점 망해가기 시작하죠. 이성적인 판단이 흐려져 이치에 벗어나는 행동을 하려는 유비에게, 여러 가지 이유를 들며 단호하게 안된다고 직언했던 인물이 조운이에요.

나라의 적은 조조이지 손권이 아니며 게다가 먼저 위나라를 멸하면 오나라는 저절로 복종해올 것입니다. 조조는 비록 죽었으나 그의 아들인 조비가 찬탈했으니 마땅히 민심을 따라 조속히 위나라의 관중을 도모해야 합니다. 하수와 위수 상류를 점거해 흉악한 자들을 토벌하면 필시 관동 지방의 의로운 사람들이 양식을 싸매고 말을 채찍질해 달려와 우리의 군대를 영접할 것입니다. 위나라를 내버려 두고 먼저 오나라와 싸워서는 안 됩니다. 군사가 한번 엇갈려 교전하게 되면 쉽게 풀 수 없습니다. - 조운 별전

무장인데도 이런 식견까지 지닌 것에 더해, 올바른 일이라면 대세와 충돌하는 것뿐만 아니라 분노한 왕에게까지도 반대하는 모습...


 

호위 장군

조운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죠. 은빛 갑옷에 하얀 전포를 걸치고 백마에 걸터앉아 긴 창을 늘어뜨린 모습까지 더해, 유비의 최측근에서 그와 그의 가족을 지켜줬던 수호신, 호위 장군.

이 특별해 보이는 별명의 유래는 촉나라와 위나라의 전투, 한중 공방전 때의 일화에서 나온 말이에요.

조조 군이 군량을 운송하는 모습을 보고, 같은 오호대장군의 일원인 황충은 이것을 빼앗을 수 있다 생각하여, 조운의 병사들을 데리고 나갔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순조롭게 풀리지 않았는지,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황충이 돌아오지 않자, 걱정이 되기 시작한 조운은 빠르게 찾아보기 위해 가볍게 수색을 위하여 성 밖으로 나옵니다.

하후연이 패하자 조조가 와서 한중 땅을 다투었고, 북산 아래에 군량을 운반하여 수천만 포대에 달하였다. 황충이 가히 이를 탈취할 수 있다 하였고, 조운의 군대가 황충을 수행해 군량을 탈취하려 했다.
황충이 기한을 넘겨도 돌아오지 않자 조운이 수십 기를 거느리고 가벼운 차림으로 나와 황충 등을 마중하며 상황을 살펴보려 했다. - 조운 별전

이때 갑작스럽게 출전한 조조의 대군과 마주치게 돼요. 

하지만 바로 내빼야 할 것 같은 이 상황에서 조운은 오히려 조조 군에 돌진하여 싸우는 선택을 합니다. 한편으론 싸우고 한편으론 물러서면서, 위나라 군의 대형을 헤집어놓고 정신 차릴만하면 또 공격하면서 말이죠.

때마침 조조가 군세를 떨치며 대병력이 출전하니 조운은 조조의 선봉에 의해 공격받아 바야흐로 싸우는데, 적의 대군이 도착하여 형세가 핍박되자, 적진에 돌진하고 한편으론 싸우며 한편으론 물러섰다. 조조 군이 패했다가 다시 합치니 조운이 적을 무너뜨리고는 진영으로 되돌아왔다.
장수 장저가 상처를 입자 조운이 다시 말을 달려 적의 진영으로 되돌아가 장저를 맞이했다. - 조운 별전

고작 수십 기로 조조의 선봉부대를 한풀 꺾어놓았을 뿐만 아니라, 그 부대와 합쳐진 후방 대군의 포위망을 뚫고 나와 되돌아온 것도 대단하지만, 더 대단한 것은 다시 달려 나가 부상당한 아군까지 구출해서 다시 진영으로 돌아옵니다.

조운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 후, 뒤따라 온 조조의 대군을 상대로 성문을 닫고 수비에 집중하려는 게 아니라 문을 활짝 열고 기다리는데... 그 모습을 본 조조 군이 복병을 숨겨뒀을까 의심하며 물러나려는 순간, 화살비를 쏟아부어 박살을 내놓습니다.

장익이 문을 닫고 막아 지키려 하였으나 조운이 문을 활짝 열고는 깃발을 내리고 북치는 것을 멈추었다. 조조 군은 혹여 조운이 복병을 두었을까 의심하여 군을 이끌고 물러났다.
조운이 하늘을 뒤흔들 듯 북을 울리며 오로지 뒤에서 조공의 군에게 융노를 쏘아대니 조조의 군이 놀라고 어지러워져 자기들끼리 서로 짓밟았고 한수에 떨어져 죽은 자가 매우 많았다. - 조운 별전

다음날 아침 유비가 조운의 진영으로 와서 전날 싸운 곳을 둘러보며 말하는데, "자룡은 일신이 모두 담 덩어리로다."라 하고, 군중에서는 조운을 일컬어 호위 장군이라 했다 해요. 여기서 유래된 것이


일신시담

一:한 일 身:몸 신 是:이 시 膽:쓸개 담

: 온몸이 쓸개로 이루어져 있다. 즉, 두려움이라고는 모르는 사람.

 

호위장군

虎 : 범 호 威 : 위엄 위 將 : 장수 장 軍 : 군사 군

호랑이 같은 위엄을 지닌 장수


 

 

호위 장군이라 불렸기 때문에 경호원의 느낌으로 호위무사 수준이라 하는 말도 많이 보였는데, 유비 곁을 철통같이 보호하고 지켰던 것도 맞지만, 호위 장군의 호위는 범의 위세라는 뜻의 호위랍니다.

애초에 조운의 호위 임무는 허저 같은 인물처럼 조조 곁에서 떨어질 일이 없던 인물과는 다르게, 유비 곁에서 떨어져서 여러 임무를 수행하며 폭넓게 활동한 것을 보면, 유비의 신변을 경호한 것은 본직이 아니라 겸직이라 할 수 있겠죠. 유래를 보면 알 수 있듯, 정식 관직명도 아닌 별명이기도 하구요.

 


군지휘관으로서 책임감

마속이 산을 타서 말아먹었다고 알려진, 읍참마속으로 유명한 제갈량의 1차 북벌 당시에 조운도 출전했었어요. 이때 조운은 제갈량과 동행한 게 아니라 다른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

228년, 제갈량이 출군하여 야곡도를 거친다고 널리 소문을 내자, 조진이 대군을 보내 이를 맞아들였다. 제갈량은 조운과 등지로 하여금 가서 막게 하고 자신은 기산을 공격했다. 조운, 등지의 군사들은 약하고 적은 강하여 기곡에서 불리했으나, 군사들을 거두어 굳게 지켰으므로 대패에 이르지는 않았다. - 조운전

이때, 조운의 역할은 미끼가 되어 위나라의 주력부대를 상대로 발목을 잡아두고 시간을 끄는 역할이었던 거죠. 그 당시 조운이라는 이름값을 이용해 미끼를 물게 할 셈이었던 것도 있었겠지만, 제갈량이 그 능력을 얼마나 신뢰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인 것 같아요. 제갈량이 주력부대를 이끌고 다른 곳으로 가고 있는 중에 적군이 그대로 밀고 넘어와버리면, 정말 위험한 상황이 만들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기록에도 조운의 군사는 약하고 적은 강하다고 나오는데, 아무래도 속이기 위한 미끼 부대이다 보니 조운의 군사는 유능한 장수도 정예병도 없으니 약할 수밖에 없고, 위나라는 주력부대가 낚여서 온 것이다 보니 강할 수밖에 없겠죠. 그런 불리한 상태로도 충분히 임무를 완수하고 있었지만, 결국 제갈량의 인사 실책으로 인해 퇴각하게 됩니다.

근데 가정 군과는 다르게 조운이 지휘했던 군은 큰 피해가 없었어요. 이걸 신기하게 여긴 제갈량이 조운과 같이 움직였던 장수에게 물으니,

제갈량이 말했다. "가정의 군이 퇴각할 때는 병장들을 서로 수습하지 못했는데 기곡군이 퇴각할 때는 병장이 처음처럼 잃은 바가 없으니 어찌 된 까닭이요?" 
등지가 말했다. "조운이 몸소 뒤를 끊고 군수물자와 집기조차 함부로 버린 일이 없으니 병장들을 잃을 까닭이 없었습니다." - 조운 별전

1차 북벌에서 퇴각한 후, 공정하기로 유명한 제갈량조차 조운의 공을 생각하여 하사품을 내리려 했어요.

패전은 맞붙어서 밀릴 때 당하는 손실보다도 퇴각 시에 병력손실이 훨씬 많다고 하여 최소한의 손실로 전력을 보존하는 것이 최선인데, 조운은 퇴각하면서 자신이 직접 최후방에 서며 이것을 최대한 이루어냈죠. 덕분에 앞에서 퇴각하던 군사들이 허둥대지 않고 질서 정연하게 움직였을 것은 말할 것도 없구요.

하지만 조운은 제갈량과 더불어 최고 사령관의 책임을 같이 지고 강등되며, 이렇게 말합니다.

군사에 이로움이 없었는데 어찌 하사품이 있을 수 있습니까? 청컨대 그 물건들은 모두 창고에 넣어두었다가 10월이 되기를 기다려 겨울 하사품으로 삼으십시오.

 

순평후

황충, 조운은 굳세고 사납고 씩씩하고 용맹하여 아울러 조아(발톱과 어금니. 용맹한 무장을 비유)가 되었으니 관(관영), 등(하후영)의 무리로다. - 조운전

229년, 조운이 죽고 나서 받은 시호는 순평후. 그의 용맹함은 이미 사서에서부터 가장 인정받는 부분으로 평가되었고, 은 자비롭고 온화한 성품에 대한 찬양, 은 일처리를 하는 것에 있어서 공정함을 뜻하는 것이니, 생전에 어떤 인물이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담력과 그에 어울리는 실력, 자신이 모시는 주군을 향한 끝없는 충심, 하지만 잘못된 행동을 하려 할 때는 따끔하게 직설적으로 말해주는 사람, 그러면서 쓸데없는 오해를 사지 않는 처세관과 적을 만들지 않는 언행, 그래서 윗사람과도 아랫사람과도 충돌하는 일이 없고, 사리분별이 빠르고 공과 사가 분명하면서 재물과 여자에 욕심을 부리지 않으며, 본인의 사리사욕보다는 국가의 미래를 위한 마음가짐을 우선시하는 이런 사람...

삼국지연의에서 조운의 죽음을 들은 제갈량은 이런 말을 합니다. "자룡이 죽은 것은 곧 국가의 대들보 하나를 잃음이요, 나로서는 팔 하나를 잃음과 같도다!"

진정한 국가의 대들보 같은 장수... 조자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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