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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애정결핍에 대해 끄적임 동시에 끄덕임 feat. 모노가타리 시리즈 대사

by HCHM 2020.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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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결핍은 왜 생기는걸까?

"부모가 자식과 사이가 나쁘다는 건 말이야, 이미 그것만으로도 학대 같은 거나 마찬가지야. 가족은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는 아니지만, 있으면 기쁜 존재여야 해. 나는 그렇게 생각한단다, 어머니로서는."

 

 

피치못할 사정으로 같은 반 친구 아라라기의 집에 잠시 얹혀살게 된 부모와 사이가 좋지만은 않은 하네카와가,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라고 하는 것이, 해야 할 가족에게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동시에 지금 상황이 익숙한 것처럼 보인 아라라기의 어머니가 "민폐가 된다는 건 아니지만." 하며 해준 말이에요.

 


작가의 의도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굳이 있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닌 걸 만들어 낸 것에 대한 책임을 묻는 말로 생각되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전적으로 동의하는 말이 나와서 깜짝 놀람과 동시에 엄청 와 닿았네요. 예전에 봤을 때도 그랬으려나요. 아마 지금보다는 덜 와 닿고 덜 놀랬거나, 혹은 아무 감정 없이 지나쳤을 거 같기도한데. 여기서 저는 문득 애정결핍이라는 말이 떠올랐어요.

부모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절대적인 관심으로, 적어도 아이가 그것으로 인해 서운한 마음은 안 들게 해줘야 할 의무가 있고, 관계가 틀어진 것에 대한 잘못도 전부 부모탓, 즉 <학대>라고 생각해요. 아이가 이제 괜찮다,라고 하기 전까지는요. 아니면 적어도 어느 정도 클 때까지나.


왜 그렇게 되는건데?

자신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려고 한다면, 그에 따른 무언가를 내야 하는 게 당연하겠죠. 빵을 만들기 위해 노동력과 시간, 어쩌면 감정까지 소모해서 투자한 제빵사에게, 그 빵이 먹고 싶다면 그와 비슷한 정도의 무언가를 내야 하는 등가교환은 지금에 있어서는 너무 당연한 거니까요. 내가 원하는 만큼 가져오는 대신 상대가 원하는만큼 지불하는 것. 그게 싫고 억울하면, 남을 이용해서 자신만 편해지려고 하지 말고, 혼자 살면 되는 거니까.

하지만 그런 너무 당연하게 생각되고 느껴지는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되었을 때, 당연히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겠죠. 흔히 애정결핍이라고 말하는 타인에 대한 절대적인 애정을 얻으려는 마음가짐과 행동은 왜 나오게 된 걸까요? 

자신이 얻고 싶던 사랑을 얻고, 행복을 얻고, 그 결과로 아이가 태어났다면, 절대적으로 아이가 원하는 것을 채워줘야 하는 의무가 생기는 건 당연하겠죠. 일을 한 노동자에게, 임금을 지불하는 게 당연한 사장처럼요. 당연한 것을 당연히 했었다면, 애정결핍이라는 건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당연히 줘야 할 임금을 주지 않으니까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임금체불 피해자처럼, 애정결핍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면 사실은 아동학대의 피해자였지 않았을까 싶어요.


결국엔

나비효과

: 나비의 날갯짓처럼 작은 변화가 커다란 변화를 유발할 수 있다.


아마 애정결핍이라고 명명하는 뭐 정신과 진단 용어 같은 건 아직은 없다고 아는데요. 제 생각뿐일지도 모르지만, 그로 인해 일어나는 행동들이나 감정에 대한 증상은 여러 가지 성격장애로 판단되고 있어요.

법이란 것이 그 자체로는 그냥 법이라고 하지만, 세세한 적용을 위해 민법, 상법, 노동법, 경제법 등으로 쪼개 놓은 것처럼, 회피성이나 의존성 성격장애 등과 같은 것들은 애정결핍이라는 것에 뿌리를 두고, 좀 더 깊이 생각해보기 위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애정결핍은 그 모든것의 기초가 되는 가장 큰 질병이라 생각해요.

그도 그럴 것이 충분히 받지 못했던 사랑에 대한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의존성 성격장애. 그 결과, 자신을 돌봐주던 사람이 없어지면, 스스로 돌볼 수 없다는 두려움에 급하게 다른 사람을 찾던지 혹은 지지해줬던 사람에게 무슨 짓을 하게 될지 모르는 위험한 유형으로 성장하게 될 가능성도 있구요.

타인에게 거부당하거나 따돌림당하는 게 무서워서, 가까워지고 싶지만 늘 작아지고 피하게 되는 회피성 성격장애. 그 결과, 자신의 문제에 대해 의논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어지고 혼자 살게 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구요. 이런 히키코모리, 즉 은둔형 외톨이가 되면 직접적인 접촉이 일어나지 않는 인터넷 상에서, 관심받기 위해 흔히 말하는 '어그로'를 끌게 될 가능성도 생기게 되겠죠. 그리고 그것은 아마 높은 확률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게될 가능성이 있구요.

만족할 만큼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기 때문에, 외로움을 느끼고, 애정을 갈망하며, 자신감이 없거나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되고, 연인이나 다른 사람 누구든지 성관계를 통한 스트레스 해소를 하려고 할 수도 있구요. 사랑을 강요하며, 말도 안 되는 거짓말도 시작하고, 상대가 부담스러울 수 있을 정도의 빈번한 약속, 안 하던 행동, 혼자 술을 마신다던지, 의처증이나 의부증 등등, 한 아이가 다른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게 되는 것으로부터 나오는 다양한 정신병에 시달리게 하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아이가 만나게 될 사회에, 그리고 만나게 될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피해를 주게 돼요.


아 그래서 결론이 뭐냐

아이를 낳아놓고 폭력을 휘두르는 것 뿐만이 아니라 무관심하게 방치해두는 것 자체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오게 될 수 있을지 정말 깊이 생각해보고 아이를 가져야 하는 건 말할 것도 없구요. 임금은 사장이 안 줬는데, 벌은 노동자가 받는 꼴이될 수 있으니까.

아이가 태어났다는 결과를 얻을 때까지 당신이 느꼈던 사랑을 전부 다 퍼부어주고, 행복에 대한 이자로 적어도 성인이 될 때까지는, 제대로 책임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어요. 기독교에는 관심 없지만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라는 말이 있죠. 너무 당연한 말이에요. 왜나면 부모 된 사람으로서,

그만큼 먼저 받아갔잖아요.


이 애니는 꽤 오래전에 본 것 같긴 한데 기억은 전혀 나질 않고, 근데 재미있게 봤다는 마음만 떠올라서 시간적 여유가 많아진 요즘, 다시 보게 되었었는데요. 쓸데없이 대사 한 줄 때문에 떠오른 게 하필 무거운 주제에 심각한 내용이라 좀 그렇지만... 애니 자체는 엄청 고퀄리티에 재미있다고 생각하니 한 번쯤 보셔도 괜찮을 것 같아요. 흔하게 생각되는 애니와 다르게 중간중간 글자가 튀어나오는 기괴한 연출에, 실제 사진도 조금씩 나와서 무서울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요.

제가 이 애니를 다시 보게 된 이유와 마찬가지로 어린시절 사랑도 받았다고는 생각되지만, 기억은 별로 나질 않겠죠. 하지만 그렇게 쌓아진 풍부한 마음은, 애정결핍이라는 반쪽짜리 사람이 아닌 혼자 설 수 있는 완전한 사람으로 성장하게 되는 것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줄 거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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